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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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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이 달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많지 않은 나날이라 덕분에 건강도 챙길 겸 자주 걷고 달리고 있다. 근사한 저택 앞에 수십년은 자리를 지켰을 듯 한 나무가 있는데 겨울이 지나 봄에 풍성하게 다시 몸집을 불린 모습이 멋드러졌었다. 초여름에 들어서며 삼일 간 비오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들이 있었는데 한참을 앓고 나서 쉬엄쉬엄 걷고자 나간 길에 그 집을 다시 지나게 되었다. 산책 길 내내 잔가지와 이파리들이 수없이 떨어져 있었지만 그리 큰 나무의 아주 굵은 가지가 속절없이 부러져 크게 꺾여있는건 믿기 힘들었다. 오랜 시간을 자연스레 자랐을 텐데 그저 늘상부는 바람에 말도 안되게 부러진 것이다. 그 후로도 그 나무 앞을 자주 걷게 되었는데, 늘 깔끔하게 정원을 관리해온 집 답게 금세 부러진 가지가 치워져 있었다..
One step 평소 뒷심이 좋지 않은것은 스스로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성실함과 거리가 먼 모습으로 오랜 시간 살아오다보니 임기응변이나 단기간의 집중 또는 요행으로 만들어온 삶의 모습들이 조금씩 힘을 다해가는 중이다. 감사하게도 다음 학기, 경험적인 면에서나 금전적인 면으로나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나 아주 작은 차이로 손에 닿지 못하고 있다. 다소 스트레스를 받아오던 측면이 해결될 수 있던 기회인데 이상하리만치 아슬아슬하게 잘 풀리다가 1점 차이, 이런 것들에서 발목이 잡힌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속으로만 답답하다. 그저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성취하기보다 신경은 곤두서되 어느 정도에서 멈춰버리고 마는 모습 때문에 자꾸만 스텝이 꼬인다. 생각이 많은 날인데 당장 고민으로 풀릴 일이 아니라, 생활에 임하는 자세가 달..
Burnout 대학원 동기들과 아침일찍 길을 나서 처음으로 시카고를 둘러보고 왔다. 다행히 교통체증없이 두시간 남짓 달리니 어느 부분인가 뉴욕과 참 많이 닮았다고 느껴지는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 내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인구는 2백만 정도. 오래된 도시 역사만큼이나 빼곡한 고층건물들, 건축 뮤지엄들이 인상적이다. 다음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MCA, Architecture Institute을 둘러볼 생각. 조그마한, 일상이 정해진 캠퍼스타운을 벗어나 오랜만에 도시를 둘러보니 당일치기가 버거웠던건지 저녁식사 즈음엔 몸도 마음도 벌써 지쳐있었다. 일자리도 문화 경험도 많을 곳이지만, 무언가 체력이 소비되는 느낌. 물론 거대한 Lake Michigan 호수 변을 뛰며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확실히 도시가..
Treadmill 이번주가 벌써 몇주차이지 Week 1, Week 2... 꼬박 꼬박 잘 세곤 했는데 이제 잘 기억도 안나고 별로 중요치도 않다. 수업있는 날 3일, 수업없는 날 4일 주4일 근무조차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주3일 수업이라니 얼마나 좋아. 환상은 둘째주부터 처참히 깨지고 그저 7일 쳇바퀴 속에 3일은 학교에서 4일은 집이나 도서관에서 씨름할 뿐이다. 쉼이나 끊어가는 날 없이 헉헉대는 것은 아직은 버틸만하다. 다만 버겁게 부랴부랴 수업, 과제 쫓아가는 것 외에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라 마음이 다소 무겁다. 그 외에도 챙겨서 해야할 것들이 꽤 있는데. 이렇게 2년이 지난다면 무서울 테지 미국 친구들이나, 영어가 유창한 친구들은 그래도 조금씩은 숨 쉬고 사는것 같은데 아직 난 시간을 허투루 쓰면 바로 ..
Excuses Week 3 수업들이 본격적으로 각기 본궤도에 오르고 어쩌면 첫 주보다는 아주 조금은 더 정신차렸지 싶으면서도 문득 다시 생각해보면, 적응의 동물답게 그 사이에 어려움, 낯섦, 힘듦을 상쇄하기 위해 여러모로 재빨리 변명들을 만들어왔지 않나 싶다. 그 정신없는 짧은 몇 주 사이에 벌써. 처음 접하는 분야, 지식, 각종 툴..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언어장벽.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이 사실이다. 정신없이 휘둘리는 와중에 뭐라도 한마디 거들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던 처음과 달리 벌써 멈칫하며 내 편한 자리를 찾고, 한마디 질문 던질 것을 다시 주어담는 모습을 본다. 한국이었으면 아직 학부생일 것 같은 나이의 동기들을 보면 부럽기도 그들의 젊음과 개성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
끊기지 않는 일상 새벽까지 읽히지 않는 논문을 연달아 읽고 억지로 눈을 뜨고 일어나 과제를 제출하고 무리다 싶은 현장 과제를 위해 동료들과 어바나 샴페인을 돌아다니고 낯선 이들과 저녁을 먹고, 친근함을 형성하려 노력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 내일 수업을 위한 논문을 읽고 내일은 수업 네개를 연달아 듣고 집에 돌아와 과제를 마쳐야 한다. 마치 하루 이틀 사흘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 속에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아직 익숙지 않아 힘이 부친다. 익숙해지면 조금 나아질테고 시간관리도 진전이 있을텐데 그에 맞추어 과제량과 일정과 난이도가 함께 올라가겠지 아마. 꾸역꾸역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떤 쉼이라든지, 털어놓음이라든지, 끊어가는 것 없이 말없이 계속 걸어가는 느낌이라 다소 버겁다 지금은.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La..
Concentration 매일 이런저런 준비로 바빴던 4일이 지나고 처음 맞이한 주말은 잠시 게으름을 피우며 멈추었다. 다음주엔 앞으로의 학업 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우고 Concentration이라 불리는, 전공 내에서의 전문 분야를 결정해야 한다. Urban planning 안에는 네 가지 정도의 세부 과정이 있다. SOP에 담아내었던 지역성과 도시재생으로 이 전공에 발을 딛게 되었는데 현실적으로 Transportation과 같은 세부 전공이 외국인으로서 전문성을 갖추기 유리해보인다. 애초에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에는 세부 전공에 교통 분야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지금 막연한 생각으로 내 관심 밖에 있던, 그러나 전문성을 갖추기 쉬워보이는 분야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미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넘어온 박사 과정 동생의 말..
재회, 그리고 기약 갑작스럽지만 밀도높은 여행을 정신없이 다녀온 뒤 학부시절 같은 학회에서 함께한 형을 만난다. 연극, 공연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해 반려자를 만나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확고히 걸어가는 그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간 몰랐던 내 소식도 전한다. 핀란드라는 먼 곳에서 혼자가 아닌, 둘로서 존재하며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처럼 잘 어울리는 한쌍으로 앞으로의 삶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어쩌면 남부러워할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만족시킬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고민되는 길을, 고민하고 나서 걸어간다. 용기있는 듯 보이는 이들은 거의 모두 각자의 두려움에 조금씩 떨면서도 한발짝 걸음을 내딛는 듯 하다. 혁신학회라는 곳에 모인 이들은 사회로 떠난 후에도 좀처럼 안정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누구나 바라는 삶에 다..